1964년 7월26일자 조선일보 보도

6.25 격전지 펀치볼
미군 철모속 편지사연
1964년 7월26일자 조선일보 보도
이석홍 당시 소대장은 동막골 귀농


글 / 박민식(육사 19기, 예비역 대령)

호국의 달을 맞아 6.25 격전지인 동부전선 펀치볼 작전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애절한 사연이 새삼 회상된다. 당시 미 25사단 14연대 소속으로 혈전에 참가했던 로버트 파카 2세의 철모 속에 담긴 그의 어머니 편지와 이를 발견한 당시 소대장 이석홍(李錫洪) 소위의 이야기다.

삭은 철모 속의 마스코트 편지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11주년인 1964년 7월 26일자 조선일보가 ‘일요화제’란을 통해 한국

▲ 지면 하단에 소개된 이석홍 소위

전선에 참전한 아들의 안부를 당부하는 미국 어머니의 편지가 펀치볼 전선에 묻혀 있다가 당시 DMZ 남방 군사분계선을 수색정찰한 이 소위에 의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인 어머니는 ‘마욜라.I.넬슨’, 그의 아들은 미 25사단 14연대 소속 로버트 파카 2세로 펀치볼의 미네소타 라인 전투에서 전사한지 12년 만에 그의 철모가 발견된 것이다. 이를 발견한 이 소위는 육사 19기로 임관된 후 첫 부임지의 올챙이 소대장이었지만 지금은 70대 노병으로 철원군 동막골에 귀농(歸農)하여 블루베리 농장을 경영한다.
이 날짜 조선일보 일요판은 동부전선의 동초(動哨) 이 소위가 주운 ‘연고자 없는 습득물’이라 표기하고 ‘삭은 철모 속에 모성애의 사연’이라고 소개했다.

신혼초 참전, 펀치볼 백병전 전사

당시 9693부대 소속 이 소위는 늘 하는 방식대로 병사들과 함께 수색정찰 나갔다가 남방 한계선 150m 지점, 문둥리산 기슭에서 군화 발길에 철거덕 소리 나는 금속성 물질을 파내어 보니 GI(미군병사)의 철모였다. 대강 헤아려 보니 피의 펀치볼 전투에서 전사한지 12년이 지나 철모는 거의 낡고 삭았다.
그러나 철모 속에 간직한 영문편지만은 웬만큼 글씨를 보존하고 있었다.
미 해병대와 25사단이 중공군 및 인민군과 백병전을 치른 지점에서 신혼초에 한국전에 참전했던 로버트 파카 2세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 지 겨우 두 달 만에 전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아마도 로버트는 어머니의 편지를 호신(護身)과 사랑의 마스코트로 철모 속에 간직했던 모양이다. 대강의 사연으로 미뤄보니 그의 아내 베라의 뱃속에는 파카 3세가 자라고 있을 것으로 짐작됐다.
이 소위는 이곳 펀치볼 전선에 피어있는 하얀꽃 사연을 앞으로 태어날 파카 3세에게 전해주고 싶어 미국 재향군인회 등을 통해 연고자를 찾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이 소위를 비롯한 육사 19기 동기 5명은 초임시절 복무지인 백두산 부대를 방문하여 6.25 격전지 일대를 돌아보며 로버트 파카 2세의 사연을 되새겨 보았다. 동기생 이준 장군(육군대장 전역, 국방부장관 역임)이 사단장을 맡고 있을 때 이석홍 소위를 비롯하여 박민식, 문영표, 김병하 등이 이 장군과 함께 제4 땅굴발견 기념표석 앞에서 기념촬영 했다.
임관 직후 19기생 동기 12명이 백두산 부대로 배치됐지만 그 뒤 월남전 참전을 거쳐 고급 지휘관으로 복무하고 전역한 후 뿔뿔이 흩어졌다. 이날 방문에서 로버트 병사의 철모를 발견한 이 소위의 감회가 가장 으뜸이었음은 물론이다.

▲ 제4땅굴 발견 앞 기념 촬영. 이준 사단장과 좌로부터 이석홍, 박민식, 문영표, 김병하 당시 소위. <사진=필자제공>

‘로버트야, 늘 하느님께 기도한다’

당시 조선일보가 미국 어머니의 사랑의 편지 내용을 미니 박스로 소개했다.
1952년 3월 3일,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시 브러시가(街) 5218, 어미 마욜라.I.넬슨이 내 아들 로버트 파카 2세에게.
마마의 다정 로버트야, 네 편지 받고 답장 못해 궁금하게 여길 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난 3,4주간 앓아누워 답장을 못했지만 지금은 일어나 마음 놓인다. 전능(全能)하신 하느님이 너를 이끌어 주실 것을 굳게 믿는다. 너를 위해 곧 베라(며느리, 로버트의 아내)를 집으로 초대할 작정이다.
네가 갓 4살 때 오랫동안 앓아누웠던 기억이 날 것이다. 그때도 하느님의 정성으로 병마에서 구출되어 늠름한 어른으로 자라게 했다. 네가 돌아올 때가지 하느님께 정성껏 기도하겠다.
너의 어미 마욜라.I.넬슨.

현역 마치고 블루베리농장 귀농

▲ 2014.9. 경제풍월 생활광장에 소개된 ‘ 동막골 블루베리’ 농장주인 이석홍· 윤희순 부부

로버트 파카 2세의 철모를 발견한 이 소위는 GOP 근무를 마치고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1975년 소령으로 전역하여 민간분야 전문가의 길을 개척했다. 건설회사 임원, 한·스페인 합작회사 CEO를 지내고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자원관리를 전공하고 미국 가톨릭대 연구원으로도 활동했다.
그 뒤 나이 60이 넘어 부인 윤희순 여사와 함께 귀농을 결심했다. 첫 복무지인 백두산 부대와 일맥상통하는 철원군 동막골에 터를 잡아 야산을 개간하여 블루베리 농장을 일궈냈다.(2014.9. 경제풍월 생활광장에 소개)
부부가 모두 농사일을 모르는 초보 농군으로 시작했지만 도전과 성취의 군인정신으로 2010년부터 블루베리 수확에 성공하여 지금은 경영수지 흑자를 기록했으니 ‘장수시대의 귀농모델’로 꼽힌다. 육사 19기 동기생들은 모두가 70대 노병이지만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블루베리 수확기에 일손을 도와주며 초임시절을 회고한다.
현역시절은 김일성의 직간접 침략이 극성일 때라 언제 어떻게 세월이 흘렀는지 분간하지 못했다. 대다수가 고급 영관과 장군으로 현역을 마친 후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나라의 부름에 쫓아 가진 것 전부를 바친 세월이었다. 그렇지만 김일성의 남침 65주년, 휴전협정 62년이 망각의 세월이나 다름없다는 느낌이다.
북의 3대 세습독재는 오늘도 동서 NLL을 수시로 집적거리며 미사일과 핵무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언제 어떤 불상사가 유발될는지 알 수 없다. 이러니 아직도 휴전선 곳곳 산하에 묻혀있을 이름 없는 용사들의 고혼(孤魂)이 편안할 까닭이 없다. 더구나 로버트 병사처럼 먼 타국에서 전사한 넋이라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겠느냐는 생각이다.
육사 19기 동기생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안보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강조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0호 (2015년 6월호) 기사입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